— 복장, 입지, 그리고 존중의 조건에 대한 문화적 성찰
일본은 예의 바른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공장소에서의 조용한 태도, 정중한 인사, 겸손한 말투—겉으로 보기엔 존중이 넘치는 사회처럼 보이죠.
하지만 그 안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존중의 기준이 ‘나이’가 아니라 ‘입지’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가 보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여러 번,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말투로 대우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양복을 입고 좋은 시계를 차고 구청에 갔을 때는 직원이 정중한 존댓말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쉬는 날이라 편한 복장으로 같은 구청을 방문했더니
그 직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로 응대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일본에서 존중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보이는 입지’에 따라 주어지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요.
🧭 반말은 단순한 말투가 아니다
일본어에서 반말은 단순한 문법이 아니라,
상대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입니다.
존댓말은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선언이고,
반말은 “나는 당신보다 위에 있다고 느낍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실제로,
능력 있고 영향력 있는 후배에게는 나이 많은 선배도 존댓말을 씁니다.
반대로, 입지가 약한 사람에게는 나이가 많아도 반말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무례가 아니라, 존중의 기준이 ‘나이’가 아닌 ‘위치’로 이동한 사회적 구조를 반영합니다.
🌍 외국인에게 반말을 쓰는 이유
많은 외국인들이 일본에서 반말을 들었을 때 불쾌함과 당혹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브런치 에세이에서는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다음과 같은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다카다노바바의 한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었는데, 점원이 처음엔 존댓말을 쓰다가
제가 외국인이라는 걸 눈치채자 갑자기 반말로 바뀌었습니다.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고,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왔습니다.”
— 형민(30대 중반, 일본 거주 프리랜서 작가)
또한 디지털데일리 기사에서는 일본인의 반말 문화를 지적한 영상에
4,6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고, 대부분은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일본 방문자들이 겪은 반말 사례
일본을 여행하거나 출장 중이던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나도 저런 경험 있었어”라는 반응이 나올 만큼,
반말 응대에 대한 불쾌한 기억은 꽤 흔하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오사카의 한 편의점에서 계산하려고 일본어로 인사했는데,
점원이 ‘これ、持っていって(이거, 가져가)’라고 말했어요.
말투가 너무 무례해서 순간 멈칫했죠. 옆에 있던 일본인 손님에게는 丁寧語(ていねいご, 정중한 말투)를 쓰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 김○○(34세, IT 기획자)
“도쿄 지하철에서 길을 물었더니 직원이 ‘こっち来て(이쪽으로 와)’라고 짧게 말했어요.
말투가 너무 딱딱하고 반말이라서,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싶었어요.”
— 박○○(27세, 대학원생)
“일본어를 떠듬떠듬 말했더니 점원이 갑자기 말투를 바꾸더라고요.
처음엔 ‘いらっしゃいませ(어서 오세요)’였는데,
제가 외국인인 걸 눈치채자 ‘何が欲しい?(뭐 갖고 싶어?)’라고 했어요.
그 순간, 내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었습니다.”
— 이○○(41세, 중학교 교사)
“후쿠오카에서 식당에 들어갔는데,
점원이 ‘座って(앉아)’라고 했어요.
주변 일본인 손님에게는 ‘こちらへどうぞ(이쪽으로 오세요)’라고 하던데,
왜 나한테만 반말이었는지 아직도 찜찜합니다.”
— 정○○(36세, 프리랜서 번역가)
이런 사례들은 단순한 언어 오해가 아니라,
외국인을 사회적 약자 혹은 ‘소토(外, 외부)’로 간주하는 무의식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 학술적 근거: 반말은 사회적 위계와 거리의 언어적 반영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개인 경험이 아니라,
언어학적으로도 구조적 맥락을 가진 현상입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등록된 논문
「일본어 ‘보통체’와 한국어 ‘반말’의 언어형식 대조 연구」(DIKO0010859470)는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일본어에서 보통체는 단순한 친근함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사회적 거리나 위계 관계를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 논문은 특히 외국인을 일본 사회 내에서
‘우치(内, 내부)’에도 ‘소토(外, 외부)’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적 존재로 인식한다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말투가 불안정하게 적용되고
존중의 기준이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 반말은 억눌린 감정의 일탈일 수도 있다
일본 사회는 “예의 바름”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중시하는 문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항상 상냥해야 하고, 공공질서를 지켜야 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많은 일본인들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이나 분노를 억누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억눌림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는 자신이 다른 일로 기분이 나쁠 때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행동을 **八つ当たり(やつあたり, 야츠아타리)**라고 부릅니다.
이 단어가 일상어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감정의 전가와 무관한 대상에 대한 공격이 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용인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저는 외국인에 대한 반말 사용도
이러한 八つ当たり와 같은 감정 구조에서 비롯된 행동일 수 있다고 느낍니다.
즉, 일본 사회에서 억눌려 있던 감정이
‘입지가 약한 외부자’에게 말투를 통해 표출되는 하나의 일탈적 해소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죠.
🔁 우리는 이 모습을 닮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글은 일본 사회의 언어적 위계와 감정 구조를 다루고 있지만,
저는 문득 한국 사회도 이와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말투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관계의 거리와 위계, 감정의 방향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존댓말은 점점 더 형식화되고, 반말은 때로는 무시와 감정의 배출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나 입지가 불안정한 사람에게
말투를 통해 무언의 판단을 내리는 모습은,
일본의 반말 문화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는 과연,
존중을 말투로부터 시작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말투를 통해 존재를 평가하고 위계를 고착시키는 사회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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