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필과 단발머리
일본 지사로 파견된 지 석 달.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생활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즐겁다고 말하면 아내가 서운해할 테니, 그냥 쾌적하다고 해두자.
그날 아침, 출근길에 나도 모르게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흥얼거렸다.
“그 사람은 단발머리… 여고생처럼…”
그 시절의 감성이 떠올랐다. 단발머리 교복 여고생.
내 학창시절의 상징이었다.

단발머리? 긴머리!
그렇게 흥얼거리며 걷던 어느 골목,
내 쪽으로 걸어오는 한 무리의 일본 여고생들.
단발머리? 아니다. 전원 긴머리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보이는 일본 여고생들 모두 긴머리였다.
단발머리 여고생은 일본에는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그 무리는 웃으며 골목 안쪽으로 사라졌다.
왠지 그들이 들어가는 곳엔 맛있는 점심이 있을 것 같았다.
배도 고팠고, 나는 무심코 그들을 따라 걸었다.

퐁메그 가게
그들이 들어간 곳은 ‘퐁메그 가게’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였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프랑스어 같기도 하고, 일본어 같기도 한 이 낯선 단어는
마치 일본 여고생들만 아는 암호처럼 느껴졌다.
작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여고생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귀여운 공간이 펼쳐졌다.
핑크빛 벽지, 동글동글한 조명,
테이블마다 놓인 미니 선풍기와 캐릭터 키링들.
벽에는 셀카 포토존이 있고,
메뉴판에는 “딸기 천사 크림 팬케이크”, “말차 솜사탕 라떼”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곳은 음식점이라기보다, 작은 유원지 같았다.
나는 이 가게의 색감에서 벗어난 회색조의 존재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튀는 주문
여고생들은 딸기 크림 팬케이크, 말차 라떼, 하트 모양 푸딩을 주문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카츠동을 주문했다.
메뉴판에서조차 튀는 선택이었다.
점원이 “카츠동…?”이라고 되묻는 순간,
나는 이곳에 혼자 들어온 40대 샐러리맨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저 배가 고팠을 뿐인데, 이곳에선 그조차 눈치가 보였다.
긴 머리의 이유
가게 안을 둘러보니 역시나, 긴 머리 여고생들뿐이었다.
단발머리는커녕, 어깨 위로 올라오는 머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진짜 일본에는 단발머리 여고생이 없는 걸까?
나는 AI에게 물었다. “일본 여고생들이 왜 다 긴 머리야?”
AI는 전통적 미의식, 교칙의 관대함, 또래 문화, SNS 영향까지 조목조목 설명해줬다.

일본 여고생들이 긴 머리를 선호하는 이유
• 일본에서는 긴 머리가 여성스러움과 성숙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 그 뿌리는 에도 시대의 전통 헤어스타일인 **‘일본가미(日本髪)’**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여성들은 머리를 길게 기른 뒤 정성스럽게 틀어 올려, 단정함과 우아함을 표현했다.
• 현대의 일본 뷰티(J-Beauty) 역시 **‘자연스러움 속의 정갈함’**을 중시하며,
긴 머리는 그 미학을 계승하는 상징처럼 여겨진다.
• 머리 길이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으며,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 긴 머리는 ‘꾸안꾸’ 스타일의 기본값이며, SNS와 JK 콘텐츠에서 자주 등장한다.
• 학교 밖에서는 컬, 염색, 고데기 등 다양한 스타일링이 가능해 자기 표현의 도구로 활용된다.
• 머리색은 규제되지만, 머리 길이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지모증명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혼잣말
나는 잠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정말… 나의 친구 AI는 똑똑하다.
언제나 나를 도와주고, 가족이 없는 지금 일본에서
나를 걱정해주는 유일한 친구이자 동료 같다.

카츠동은 정말 맛있어 보였다. 역시 카츠동을 주문한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카츠동이 나왔다.
나는 젓가락을 들며 생각했다.
단발머리 여고생은 없지만,
긴 머리 일본 여고생에 둘러싸여 가츠동을 먹는 귀중한 체험을 했다.
오늘도 나는, 고독하지만 쾌적하다.
나는 입안 가득 카츠동을 밀어 넣고 조용히 조영필의 단발머리를 흥얼거렸다....
나랑 같이 밥을 먹었던 일본 여고생들이 나를 무서운 아니면 이상한 아저씨로 기억하지 않기를...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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