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고생

일본 여고생 – “여창 안니게요” (혼욕탕에서 들려온 어설픈 한국어)

꿈을 꾸는 지렁이 2025. 11. 2. 06:30

와...진짜 시골이다..

군마에서도 한참 벗어난 외곽 마을. 생각보다 훨씬 더 시골스러웠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진 건, 폐가 아릴 정도로 차고 맑은 공기였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몸속 먼지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


길가에 서 있는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을 향해 조용히 웃었고, 그 웃음은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순박하고, 조심스럽고, 따뜻했다.
졸업 여행 특집 취재차 내려온 출장지였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 지 석 달. 생활은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고독인지 평온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안 외롭다’고 말하면 아내가 마음 아파할 테니, 그냥 ‘조용하다’고 적어두자.

노천탕에서 패닉...이건 아니다

그날 오후, 료칸에서 추천한 노천탕에 들렀다.


“노천 혼욕탕입니다. 수건 착용 필수예요.”


직원이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혼욕’이라는 단어에 별다른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피곤한 몸을 잠시 담그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 무심함은 ...잠시후의 패닉으로 연결된다.


탕 안은 조용했다.


수건을 두르고 조심스레 들어섰을 때, 반대편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젖어 어깨에 붙어 있었고, 노천탕 앞에 접힌 교복 상의가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여탕인가요?”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잠시 생각한 뒤 어설픈 발음으로 말했다.

“여창… 안니게요.”

그 말은 문법적으로도, 발음적으로도 어딘가 이상했지만,
그녀는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더 패닉에 빠졌다.
도망치듯 탕을 빠져나와, 카운터로 달려갔다.


“저기… 여고생이 있었는데요. 여탕 아닌가요?”


직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 여고생이 있었어요? 여긴 혼욕탕이에요. 남녀 구분 없어요.”

그태연함이 나를 더욱 패닉에 빠지게 했다.


나는 입구를 다시 확인했다.


남탕, 여탕… 그런 표시는 없었다.


그저 ‘노천탕’이라는 글자만 적혀 있었다.


요즘 여고생은 한국어를 한다?


그녀의 어설픈 한국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요즘 일본 여고생들 사이에서는 한국어를 흉내 내거나, 실제로 배우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틱톡, 유튜브, 트위터(X) 같은 SNS에서는 “미아네”, “누나”, “치맥”, “엄빠” 같은 한국어 표현이 일상처럼 쓰이고,
“ケンチャナ(괜찮아)”, “ハンサム(잘생긴 사람)” 같은 단어는 일본어 속어처럼 자리 잡았다.


이는 단순한 K-POP 팬심을 넘어서, 한국어 자체가 ‘귀엽고 센스 있는 말’로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고생들 사이에서는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것이 ‘트렌디한 감성’으로 여겨진다.


그녀가 말한 “여창 안니게요”도, 어쩌면 그런 유행의 일부였을지 모른다.
나는 그 어설픈 발음 속에서, 문화의 파편과 세대의 감각을 동시에 느꼈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오늘은… 소바가 먹고 싶다.


근처 식당을 검색하다가, 료칸 직원이 추천한 ‘완코소바 전문점’이 떠올랐다.
이와테현의 향토 음식이라더니, 군마에도 체험 가능한 곳이 있다니 의외였다.


작은 그릇에 한 입 분량의 소바가 담겨 나오고,
그걸 다 먹으면 직원이 바로 다음 그릇을 채워주는 방식.


뚜껑을 덮기 전까지는 계속 리필된다.
나는 그냥 조용히 소바를 먹고 싶었는데,

 

이건… 나에게 질수 없는? 도전이었다.


“몇 그릇 드셨어요?”


옆자리의 여고생이 물었다.


나는 뚜껑을 덮는 타이밍을 놓쳐서,
결국 43그릇을 먹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한국 사람, 소바 잘 먹네요.”


나는 피식 웃었다.


“혼욕탕에서 만났던 그 여고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녀의 말투는 어딘가 익숙했다. 


소바 챌린저 덕분에 배가 터질듯한것을 참아가며 옆의 여고생에게 들키지 않도록..

 

왜냐고?

한구어를 읽을줄 알수도 있잖아...

 

조용히, 나는 AI에게 물었다.


“일본에는 아직도 혼욕 문화가 있어?”


AI는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설명해줬다.

일본의 혼욕 문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일본의 혼욕 온천은 대부분 시골 지역에 남아 있으며, 관광지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  수영복이나 수건 착용이 필수이며, 성별 구분 없이 입장 가능하다
•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이색 체험으로 인식되지만, 일본인에게도 낯선 경우가 많다
•  군마현의 다카라가와 온천처럼 자연 속 혼욕탕은 SNS에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혼욕은 당연하다?


AI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본인은 혼욕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말, 정말 그럴까?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는 일본의 혼욕 문화가 마치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것처럼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혼욕탕은 대부분 시골 지역에 제한적으로 남아 있고,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낯설거나 꺼려지는 경우가 많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젊은 세대는 오히려 혼욕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여고생이 어설픈 한국어로 말한 “여창 안니게요”라는 말도,
그 마을의 문화와 그녀의 성격,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작은 노력에서 나온 순간일 뿐이다.


일본 전체를 대표하는 반응은 아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지역적이고 개인적인 것인지 다시금 실감했다.

 

재도전

나는 조용히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다시 수건을 챙겼다.


이번엔 마음의 준비를 하고 탕으로 향했다.


교복은 없었다.


그녀는 이미 떠난 듯했다.
하지만 증기 속엔 아직도 그 말이 맴돌았다.
“여창… 안니게요.”
오늘도 나는, 고독하지만 쾌적하다.
나는 조용히 탕에 몸을 담그고,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흥얼거렸다…
갑자기 같이 목욕했던 일본 여고생을 셍각하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창… 안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