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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고생들의 인간관계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종종 비슷한 말을 한다.

"멘탈이 약해서 그래."

"눈치가 없어서 그런 거야."

"사회성이 부족한 거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더 강해져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이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일본에서 살아오며 수많은 일본 여고생들을 보았고,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괴롭힘도 여러 번 목격했다.

그 과정에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은 단순했다.

정말 모든 인간은 같은 강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는 언제나 약한 사람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일까.

⭐ 나는 일본 여고생들을 보며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했다

나는 군대를 다녀온 후 일본으로 유학을 왔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할 당시 대부분의 일본 여고생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덕분에 그들의 인간관계에 직접 휘말리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항상 중심에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항상 주변부에 있는 아이도 있었다.

신체적으로 특별히 강한 것도 아니었다.

집안이 특별히 부유한 것도 아니었다.

성적이 압도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쉽게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주도했다.

반대로 또 다른 아이는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늘 집단의 바깥쪽에 위치했다.

돌이켜보면 학교에서도 그랬고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도 비슷했다.

나는 처음에 이것이 환경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같은 학교,

같은 지역,

비슷한 가정환경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 인간은 정말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태어날까

우리는 인간을 하나의 종인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같은 종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존재는 아니다.

개를 생각해 보자.

치와와도 개다.

셰퍼드도 개다.

불독도 개다.

 

하지만 우리는 치와와에게

 

"왜 셰퍼드처럼 강하지 못하니?"

 

라고 묻지 않는다.

애초에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행동유전학 역시 인간의 기질에 개인차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토머스 부샤드가 진행한 미네소타 쌍둥이 연구에서는 외향성, 신경증 성향, 충동성 등 여러 성격 특성이 일정 부분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했다(Thomas Bouchard · Minnesota Study of Twins Reared Apart · 1990).

이것은 인간의 운명이 유전자로 결정된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모든 인간이 똑같은 정신적 강도와 사회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누군가는 거절당해도 금세 잊는다.

누군가는 같은 일을 몇 달 동안 마음속에 담아 둔다.

누군가는 사람들 속에서 힘을 얻는다.

누군가는 사람들 속에서 지쳐 버린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이 차이를 자주 무시한다.

⭐ 일본 여고생 사회는 인간의 차이를 더 크게 증폭시킨다

일본 사회학자 나카네 치에는 일본 사회를 분석하며 일본은 능력 중심 사회이기보다 관계 중심 사회의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中根千枝 · タテ社会の人間関係 · 1967).

일본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교실.

부활동.

점심시간.

문화제.

수학여행.

하교 그룹.

SNS.

학생들의 하루 대부분은 인간관계 속에서 흘러간다.

한국에서도 인간관계는 중요하지만 일본 학교에서는 "공기를 읽는 능력" 자체가 또 하나의 생존기술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것이다.

만약 모든 학생이 같은 적응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떨까.

만약 누군가는 본능적으로 집단에 잘 녹아드는 반면,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갈등에 더 민감하다면 어떨까.

그때부터 같은 교실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어떤 학생에게는 즐거운 교실이,

다른 학생에게는 매일 긴장해야 하는 전장이 된다.

⭐ 우리는 왜 항상 약한 사람에게만 변화를 요구할까

여기서 나는 더 큰 의문에 도달했다.

사회는 늘 같은 말을 반복한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에게

 

"불안해하지 마."

 

우울한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에게

 

"더 강해져."

 

하지만 이것은 너무 이상한 말이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더 열심히 걸어."

 

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현대 심리학이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지행동치료를 발전시킨 애런 벡은 감정을 단순히 억누르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설명했다(Aaron Beck · Cognitive Therapy and the Emotional Disorders · 1976).

또 수용전념치료를 개발한 스티븐 헤이즈는 불안을 제거하는 것보다 불안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Steven Hayes ·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 1999).

현대 심리학은

 

"왜 그렇게 약하냐"

 

보다

 

"왜 그렇게 힘들 수밖에 없는가"

 

를 먼저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 어쩌면 우리는 문제를 잘못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본 여고생들의 괴롭힘을 보면서 점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늘 피해자를 분석한다.

왜 예민한지.

왜 상처를 받는지.

왜 적응을 못하는지.

하지만 정작 집단의 구조는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은 사람마다 감각 자극과 사회적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Elaine Aron · The Highly Sensitive Person · 1996).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웃고 넘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같은 따돌림을 당해도 어떤 사람은 잊어버린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차이는 나약함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인간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 닭에게 날라고 말하는 것은 도움이 아니다

나는 이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닭을 떠올린다.

닭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닭에게

 

"더 노력하면 독수리가 될 수 있어."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도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너무 쉽게 그런 말을 한다.

"신경 쓰지 마."

"강해져."

"멘탈을 키워."

"사회생활 원래 다 그런 거야."

정작 그 사람은 이미 누구보다 노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 일본 여고생의 괴롭힘은 결국 인간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유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이 우월하고 어떤 사람이 열등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훨씬 단순하다.

인간은 생각보다 서로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행동유전학은 인간의 기질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Thomas Bouchard · Minnesota Study of Twins Reared Apart · 1990).

심리학은 사람마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고 말한다(Elaine Aron · The Highly Sensitive Person · 1996).

일본 사회학은 일본 사회 자체가 인간관계를 매우 중시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中根千枝 · タテ社会の人間関係 · 1967).

그렇다면 일본 여고생 사이의 서열과 괴롭힘은 단순히 누군가의 성격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인간들이 하나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도록 요구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일 수도 있다.

⭐ 결론

나는 약한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약한 사람을 바꾸려고만 해 왔다.

불안한 사람은 덜 불안해져야 하고,

우울한 사람은 더 긍정적이어야 하고,

괴롭힘을 당한 학생은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질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 바뀌어야 하는 것은 개인일까.

아니면 모든 인간이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회의 시선일까.

나는 일본 여고생들의 서열과 괴롭힘을 보며 오히려 후자에 더 가까운 답을 찾게 되었다.

우리는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인간의 다양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일본 여고생 사이에서 반복되는 괴롭힘은, 그 모순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작은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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