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고생

이곳에서 내리면 죽는다 – 키사라기 역 -일본 여고생 괴담

꿈을 꾸는 지렁이 2025. 11. 10. 06:30

여름 축제의 끝, 막차를 타다

일본 여행 중, 나는 한적한 지방 도시의 여름 마쯔리를 취재하고 있었다.
유카타를 입은 일본 여고생들이 거리 곳곳을 채우고,
야키소바 냄새와 금붕어 잡기 소리, 불꽃놀이의 잔향이
밤공기 속에 섞여 있었다.
축제가 끝나고, 나는 막차를 탔다.
술기운이 살짝 올라 있었고,
열차 안은 조용했다.
창밖은 어둡고, 창문에 비친 내 얼굴만이 또렷했다.

이상한 역에 도착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열차가 멈췄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내렸다.
플랫폼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역명판이 눈에 들어왔다.
「きさらぎ」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진짜… 키사라기 역?

키사라기 역 괴담 – 실시간으로 사라진 그녀

2004년, 일본의 익명 게시판 2ch에 올라온 실시간 글.
닉네임 ‘하스미’를 쓰던 사용자는 “하마마츠에서 막차를 탔는데, 이상한 역에 도착했다”고 했다.
역명은 ‘키사라기’.
지도에도 없고,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그 역에서
그녀는 점점 현실과 괴담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그녀의 마지막 글은 그렇게 끝났다.
그 이후,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일본 여고생 괴담은 이후 수많은 해석과 패러디, 그리고 영화화로 이어졌다.
2022년에는 《도쿄괴담: 키사라기역》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제작되었고,
2025년에는 속편 《키사라기역 Re》가 개봉되며
괴담의 세계관은 더욱 확장되었다.
영화 속에서는
•  키사라기 역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
•  현실과 이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  “빛의 문은 단 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다”는 설정 등
괴담의 핵심 정서가 시각적으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영화화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서
일본 사회가 괴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며, 문화로 흡수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키사라기 역은 이제 단순한 인터넷 이야기나 도시전설이 아니라,
청춘의 불안, 현실의 경계, 그리고 존재의 흔들림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적 장치가 되었다.

패닉, 그리고 깨달음

나는 플랫폼을 두리번거렸다.
역무원도 없고, 안내 방송도 없었다.
주변은 산과 안개뿐.
그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여긴 종점입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더듬거렸다.
“…여기… 키사라기 역인가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뇨, 여긴 키사키(喜々津) 역이에요. 글자 잘못 보신 듯하네요.”
나는 멍하니 역명판을 다시 바라봤다.
「きさき」— 키사키.
술김에, 나는 きさらぎ와 きさき를 혼동했던 것이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는 벤치에 앉아 숨을 돌렸다.

하지만, 그 일본 여고생은 누구였을까?

잠시 후,
플랫폼 끝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유카타를 입은 일본 여고생.
그녀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의 유카타는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이 아니었다.
색감도, 매무새도, 마치 오래된 사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
머리 모양도, 자세도, 지금의 일본 여고생들과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다가갔다.
“아가씨, 여긴 종점이에요. 혹시 뭘 잘못 알고 계신 건 아닌지…”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다음 역이, 키사라기예요.”
그 순간, 나는 다시 긴장했다.
그녀의 눈빛은 분명히 나를 보고 있었지만,
그 안엔 내가 알 수 없는 시간의 결이 담겨 있었다.
그때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땐—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이제 괴담은 끝났을까,
아니면 이제 막 시작된 걸까.